8卷3冊 : 四周雙邊 半郭 19.2 x16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31.3 x 20.6 cm.
조선 중기의 학자인안덕문의 시문집이다. 여석(如石)의 아들이며 의령사람이다. 아버지의 명으로 두 차례 응시했으나 곧과거를 폐하고 경전을 연구하기에 힘썼다. 당시의 유현(儒賢) 을 찾아 사사하기를 권하면 “사도(師道)가 옛날과 달라 의문이나 강질(講質)하고과오(過誤)를 고칠 것을 힘쓰지 않고 표방하여 미명(美名)을 취하기에 급급하니 표면을 보면 호안정(胡安定) 의 문인이나 심적(心跡)을 살펴보면 보잘것없으니 차라리 산중에 숨어살며 자유로이 독서하며 뜻에 맞추어 스스로 즐길 뿐이다.”하였다. 교화에도 힘써 흥학당(興學堂)을 세우고 첨학전 (瞻學田)을두어서 교육에 힘썼다.
이 문집은 1912년 현손 효제(孝濟), 석제(奭濟)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는 서정적 감회를 읊은 서경(敍景), 영물(詠物)이 많은데시어가 평이하면서 다채로우며 문학적 아조 (雅調)의 윤기가흐른다. 「남원광한루(南原廣寒樓)」는 명승지의 풍경과 감회를 읊은 것으로 서정과 운치가 넘친다. 서(書)는 주로 친구 간에 세상사와 문후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며 이황, 이언적, 조식의 학덕을 높이 찬양하여 그들의 문집을 탐독하고 있다는내용이 여러 군데에 있다.
잡저의 「어제구농서대(御製求農書對)」는 농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한 대책을 논한 글이다. 「동유록(東遊錄)」은영동, 영남지방의 명승고적과 각 서원 등을 돌아보고 쓴 기행문이다.